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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정일 처남 성일기 “북 평화협정 제안 실감안나”

이예진 기자 기자  2010.01.12 08: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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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북한이 평화협정을 제안했다. 6∙25 전쟁이 발생한 지 60년만의 일이다. 이 소식을 몹시 기다린 사람 중의 한 사람을 만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첫번째 부인이자 김정남의 친어머니인 故 성혜림씨의 큰 오빠 성일기(77)씨이다. 북한의 평화협정 제안 발표가 있던 날 성씨는 기자가 전화하기 전까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사진=김정일 처남 성일기씨가 북한 평화협정 제안 발표 뒤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평화협정 제안 소식을 들은 성일기씨가 마른 기침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6∙25 전쟁 당시, 빨치산으로 활동한 성씨는 험하다고 소문난 울산광역시 울주군 배냇골에서 주로 활동했다. 배냇골은 한 여름 낮에도 새벽같이 안개가 자욱하고 대형냉동실에 들어간 것처럼 냉기가 가득한 동네이다. 그곳에서 이산 저산을 넘나들며 3년을 버틴 그였지만, 평화협정은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산이라 생각했다. 북한의 평화협정 제안은 그가 8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들었던 새해인사 중 가장 인상 깊어 보였다.

성일기씨에겐 두 명의 여동생이 있다. 한 명은 앞서 말한 故 성혜림씨이고, 또 다른 한 명은 지난 1997년 피살당한 故 이한영씨의 친어머니인 성혜랑씨이다. 성혜랑씨는 현재 해외에 거주 중이나 구체적인 체류국가는 알려지지 않았다. 성일기씨가 분단이래 여동생들을 만난 것은 1997년과 2002년 모스크바에서였다. 게다가 2002년에 그를 “오빠”라고 불러준 사람은 성혜랑씨 뿐이었다. 혜림씨은 긴 투병 끝에 사망한 뒤였다.

평화협정 제안을 들은 성씨는 “혜랑이의 소식이 궁금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혜랑이가 2008년 말까지만 해도 내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엔 용돈과 함께 전화를 걸어왔으나 작년과 올해엔 통 소식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어 “혜랑이가 마지막 통화에서 한 말이 마음에 걸린다”라고 했다. 성씨는 혜랑씨가 “화가 나서 도저히 남한에 못 가겠다고 했다”고 밝혔다. 성씨의 말에 따르면, 성혜랑씨는 지난해 남한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성씨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혜랑씨가 남한에 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혜랑씨는 혜림씨와 함께 1996년 망명을 시도했으나 실패해 남북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신세가 됐다. 이한영씨의 저서 <김정일 로열패밀리>에는 그가 혜랑씨와 혜림씨의 망명계획에 대해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가졌으나, 망명하기 전 계획이 보도돼 망명이 무산된 내용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성씨는 “내가 더 이상 비행기를 탈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안 좋으니, 혜랑이가 와야 만날 수 있다”며 “전화올 때가 됐는데”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성씨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해 장시간 외출 및 여행이 어려운 상태이다.

그는 또 “정전협정 뒤에 평화협정이 이어지는 것은 사실 일반적인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북은 그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고 덧붙였다. 정전협정을 했을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무살이었다. 성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옆에 있던 동료에게 말을 걸었는데 말이 없어 고개를 돌려보면 동료가 총에 맞아 싸늘한 주검이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배가 고파 다같이 주먹밥을 먹고 있는데 흙이 묻은 주먹밥이 도르르 굴러왔다. 굴러온 쪽을 보면 동료가 죽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스무살 청년은 이제 일흔일곱이 됐다. 그의 말대로 평화협정이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터뷰는 성일기씨의 집에서 이뤄졌다. 옆에서 부인인 장영호(76)씨가 말을 거들었다. “십 년 뒤면 통일이 오겠지요? 나는 오래 살 생각은 없는데, 십 년 뒤엔 우리 자식들이라도 평양에 있는 시부모님 묘를 남한으로 모셔왔으면 좋겠어요. 이게 우리 유언이에요”라고 말했다. 장씨는 “그래야 남편 설움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질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성씨는 말없이 텔레비전을 봤다. 텔레비전에는 101세 할머니가 천진한 표정으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