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2009년 한해가 저물어가면서 다가올 2010년 새해 연하장과 달력이 회사와 가정에 배달되는 시기다. 이들 연하장과 달력은 주로 각 기업체들의 주요 거래처와 고객들에게 감사의 의미와 홍보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 관례다.
새해 달력에는 각종 국경일을 포함해 공휴일이 얼마나 있으며, 자신의 생일은 무슨 요일인지 등 받아보는 이들의 소소한 가정사와 의미 있는 날들을 먼저 찾아 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국경일과 각종 기념일이 기록돼 있을 달력에 느닷없이 일왕의 생일과 일본 건국기념일 등이 적혀 있다면 받아 보는 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최근 이와 같은 일이 실제로 발생해 제작 의도와 제작 및 배포사에 대한 역사적 정체성에 심각한 의문이 드는 사례가 나왔다.
문제의 업체는 다름 아닌 앰배서더 호텔로 국민들에게 친숙하게 알려진 국내 대표 호텔 체인망 그룹이다.
앰배서더 호텔은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프랑스 Accor 그룹과 합작으로 국내의 모든 브랜드 판권 소유 및 경영 계약을 통해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 수원, 창원 등 전국 9개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 달력 속 "천황폐하 만세" 들리는 듯

<사진= 12월 23일은 현 일왕의 생일로 일본 국경일로 지정돼 있다>
앰배서더 호텔 그룹에서 제작·발송한 2010년 달력에는 일본의 국경일과 각종 기념일들이 일본 현지와 동일한 형태로 만들어 졌으며, 우리나라의 국경일과 기념일도 함께 혼재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를 띄고 있다.
그러나 12월 23일(기사 작성일)의 경우는 놀랍다는 수준을 넘어 충격적이다. 현재 일본의 국왕인 아키히토(明仁)의 생일은 국경일로 지정돼 있는데 앰배서더에서 배포한 달력에는 우리나라 공휴일인 성탄절과 함께 나란히 국경일로 표시돼 있다.
이러한 달력은 새해 2010년 1월 부터 한장씩 넘기면 더욱 놀라운 사실의 연속이다. 2월 11일은 건국기념일로 표기돼 있는데 당연히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의 건국기념일이며, 4월 28일은 '이충무공 탄신일'이라는 우리의 기념일을 표시하면서 그 다음날인 4월 29일은 '소화(昭和)의 날'이 나란하게 기록되는 기막힌 일이 연출됐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우국충정의 표징인 이순신 장군과 제국주의 침략 야욕으로 아시아 전체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 넣은 장본인인 히로히토(昭和)의 생일을 같이 표시한 세계 유일의 달력이 된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내년은 민족의 수치인 1910년 경술국치 100년에 해당하는 해로 한일간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다면 앰배서더 호텔 계열에서 제작한 달력은 '역사 의식 부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최근 광화문 광장에서도 언론과 시민들의 역사 의식이 반영됐다. 사건의 핵심은 이순신 장군 동상 아래에 위치한 분수 이름인데 '12ㆍ23분수'로 인해 서울시는 '탁상행정'의 상징이라는 오명을 썼다. 이름에서 '12'는 충무공이 12척의 배로 왜선 133척을 격파한 명량대첩을 상징하며, '23'은 23승 무패의 전적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서울시는 밝혔다.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름이지만 아이러니하게 이미 밝힌 바와 같이 12월 23일(오늘)이 현 아키히토(明仁) 왕의 생일이라는 점에서 반감을 더 키우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 많은 시민들이 해당 분수 명칭 개명 민원을 제기했으며, 이에 대한 해당 관계기관의 검토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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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일본 내에서도 우익의 주장으로 탄생한 소화의 날이 이충무공 탄신일 다음날로 기록돼 있다> | ||
한일간 역사관계는 현재 진행형이다. 매주 수요일 마다 제국주의 침략 시기 꽃다운 청춘이 짓 밟힌 할머니들의 절규가 일본 대사관 앞에 울려 퍼지고 금수강산 산하는 제국 일본이 파괴한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특히, 35년간 우리 고유의 정신 문화는 철저히 파괴당해 전통 문화 복원에 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재 진행행 역사 장면은 다가올 한일 우호 친선 증진의 이름 속에서 일왕 방한 추진이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서울 명동을 점령한 '엔화 파워' 속에서 경제적 실속을 챙기자는 실리적 주장도 공존하고 있다.
문제의 달력을 제작·배포한 앰배서더 호텔 계열은 바로 이러한 실리적인 주장을 대변한다.
앰배서더 호텔 관계자는 "이미 지난 십여년 간 제작해 온 것을 왜 문제 삼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국내 호텔에서 일본 마켓이 가지고 있는 수요는 절대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호텔과 국내 관광 관련 업계 종사자 및 일부 계층에게만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도 국내용과 국외용을 따로 제작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문에 해당 호텔 관계자는 "외부에서 보면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비즈니스적인 측면과 제작 비용적 측면을 고려해 한일 혼용 달력을 만들었으며, 문제의 지적에 대해서는 현재 배포된 수량의 회수는 어렵지만 이후 제작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을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열람 가능한 달력의 특성상 앰배서더 호텔의 주장은 다소 무리가 있는데 일본을 대표하는 일본항공(JAL)의 2010년 달력에는 한국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달력이 배포된 점을 감안한다면, 향후 논란의 여지가 남아 있다.
결국, 역사에 대한 정체성 논란과 실리적 이윤 창출이라는 상충된 부분에 대한 고민은 2010년에 우리에게 던져진 과제로 다가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