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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북한 화폐개혁, 주민의 환상을 깼다

백병훈 주필 기자  2009.12.21 08: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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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북한정권이 화폐개혁으로 패착을 둔 것 같다.
이번에 단행된 화폐개혁의 여파가 언젠가는 북한정권을 곤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조치가 북한에서 일어 날 수 있는 '아래로 부터의 혁명' 의 불씨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90년대 후반 대기근 사태 때 배급이 끊어지자 상당수 주민북한은 먹고 살기 위해 ‘장마당’이라는 市場을 만들었고 눈물겹게 돈을 모았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애써 시장에서 모은 돈의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북한주민 70%가 의식주를 의존해 온 자생적 시장경제가 타격을 받은 것이다. 화폐교환 과정에서 일부 돈이 은행에 강제 예치돼 힘들여 모은 돈을 국가가 강제 몰수하는 형국도 초래됐다. 민간부문에서 자생적으로 발생한 시장경제가 공식경제 규모를 훨씬 능가하게 될 때 북한체제는 도전받는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시장을 ‘약한 고리’로 삼아 느리지만 서서히 막을 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를 증명하듯 화폐교환 소식이 전해지자 ‘장마당’이 마비되면서 한순간 패닉상태에 빠졌다.
곳곳에서 눈물 섞인 분통이 터져 나왔다. 지역 당, 인민위원회 간부들이 총 동원돼 화폐교환의 필요성을 선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 간부들과 사법일꾼들은 긴급 대책회의를 진행하면서 사태진정 방안에 전전긍긍했다. 인민보안성의 모든 인력이 주민통제에 나섰다. 국가안전보위부와 보위사령부, 군부대까지 소요사태를 우려해 비상대기령이 발령됐다고 한다. 던진 충격이나 받아 안은 충격 모두가 만만치 않은 상황임을 짐작케 했다.

이 과정에서 북한정권은 경제적 효용이나 체제내부 측면에서 시장에 축적된 자본을 왜 흡수해야하고, 자율성을 왜 차단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국가가 대신 해주지 못했던 주민의 생존권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 가치를 놓쳤다. 정권에 대한 불만과 자신의 처지에 대한 자괴감이 둑을 넘쳐흘러 내릴 것이라는 점을 그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북한의 혹독한 경제난은 골목시장경제를 활성화시켜 먹고사는 문제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권력의 눈에는 일반대중이 축적한 부와 힘이 자신들에 맞서는 상황으로 진전되는 것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지난 9월,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같이 갈수 없다고 했다. 잠시 자생적 시장경제에 익숙해져 있던 주민들의 불만과 원망이 깊이 쌓이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이점이 패착이다.

화폐개혁의 목표가 무엇이건 말없이 살아준 주민들에게는 큰 충격과 혼란이다.
가치관, 국가관, 세계관으로부터 개인의 사생관에 이르기까지 의식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남길 가능성이 크다. 헤겔은 일단 관념의 세계에서 혁명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는 현실도 더 이상 참아내지 못한다고 헤아렸었다. 그동안 누가 누구의 편에 섰고, 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해왔는지에 대해 북한주민들의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 혼란의 끝은 ‘속아 살아 온 것’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당과 지도자에 대한 두려운 존경심, 체제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 그래서 ‘죽어도 영광, 살아도 영광’ 이었다는 전설 같은 신화가 도전받게 된다.

‘혁명의 정치학’이 이를 확인한다.
대중과 권력 사이에 믿었던 신뢰가 무너지면 체제의 불안정성이 증대되고 민심이 동요한다. 믿음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시작되면 그동안 보냈던 존경과 경외스러운 맹종의 신비주의가 파괴된다. 배신감을 느낄 때 언제라도 신뢰와 존경을 철회할 준비가 되어있는 것이 인간이다.

혁명의 여명기, 제정(帝政) 러시아 민중들은 황제라는 짜르의 위신에 가려진 가혹한 탄압에 죽음의 저항으로 맞섰다. 민중들이 압살되자 그들은 짜르를 버렸다. 그들은 황제와 자신들 사이에 존재한다고 믿었던 동화와도 같은 관계의 환상에서 깨어났다. 노예 같은 참담한 삶을 살았던 민중들은 스스로를 옭아맸던 ‘환상’으로부터 벗어나자마자 하늘보다도 더 높았던 황제의 절대권위를 하룻밤 만에 땅으로 끌어 내렸다. 짜르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과 존경심도 미련 없이 철회했다.

   
   
그 날 하루 만에 그들의 머리는 중세에서 근대로 뛰어 나왔다고 역사가들은 기록했다. 그래서일까 독일 시인 하이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치유되지 못하는 것도 인간 공통의 증오는 가능케 한다고 보았다. 예외는 없다. 사상유례없는 북한정권의 교조주의적 혁명체제는 이제 ‘스탈린의 무덤’을 향해 의미 있는 행진을 시작했고 보여 진다. 빈곤과 가혹한 폭정을 종식시켰던 러시아의 역사적 사건이 필연적 우연에서 비롯된 것처럼, 북한의 화폐개혁 ‘사건’도 우연의 단초를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번 화폐개혁이 북한정권의 마지막 화폐개혁이 될지도 모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북한주민들은 빛바랜 혁명의 깃발을 부여잡고 허위의식의 영광에 열광하며 발을 동동 굴렀던 환상에서 깨어나 세상의 진실을 엿보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
(백병훈/ 프라임경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