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기업은 대내외 경제 상황과 경영 방침에 따라 성장하거나, 몰락한다. 이는 세계적인 기업도 마찬가지다. 변화의 바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2류, 3류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조명하는 특별기획 [50대 기업 대해부]는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동부그룹을 조명한다. 그룹의 태동과 성장, 계열사 지분구조와 후계구도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그때 나는 죽고 싶었다. 아니 죽으려 했다. 4년간의 공사에서 이익을 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손해를 얼마나 줄이느냐 하는 일에 나의 노력을 경주한다는 것이 너무 싫었다. 이런 상황에 나라에 큰 손해를 끼친다는 더할 수 없는 죄스러운 마음까지 겹쳐 눈앞이 캄캄했다. 중동 진출과 성공의 꿈은 사라지고 좌절의 늪에 빠졌다는 생각에 피사의 사탑 앞에서 양주를 한 병이나 마시고 탑에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작정하였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자니 그 동안의 고생이 너무 아까웠다. 이탈리아 말도 모르면서, 죽어서 이탈리아 귀신들 틈에서 고생할 것 같다는 쓴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죽더라도 고국에 돌아가서 죽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다. 죽기로 마음먹었더니 다시한번 부딪쳐 보자는 각오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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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금융센터 본사 사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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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주베일 해군기지 공사 1차 입찰이 미육군공병단 지중해사령부가 있는 로마에서 가까운 ‘리보르노’라는 도시에서 실시됐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을 필두로 한 입찰팀은 사생결단의 승부로 생각하고 달려들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입찰엔 성공했지만 내정가가 400만달러나 적었던 것이다. 공사예정 금액추정에서의 착오와 반드시 수주하겠다는 일념에서 빚어진 불행한 사태였다.
이대로 계약이 체결된다면 동부의 사우디 공사는 막대한 손실을 보는 것이 명약관화한 암담한 순간이었다. 그대로 공사를 진행했다면 1000만달러 이상의 손해가 불가피했다.
김준기 회장은 죽는 대신 죽을 각오로 다시 일어섰다. “가난한 나라의 청년이 나라에 손해를 끼칠 수 없다”며 무작정 발주처로 찾아간 김 회장은 끈질긴 설득 끝에 재입찰을 성사시켰다. 결국 그는 당초보다 약 2000만달러나 높은 금액에 공사를 낙찰 받았다.
이 때 벌어들인 ‘오일머니’는 훗날 동부를 일구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게 된다.
◆선택과 기회의 달인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9년 김준기 회장은 만 24세 나이로 직원 둘을 데리고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창업했다. 건설업을 창업 업종으로 선택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리스크가 크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나 설비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점 하나였다. ‘미륭’은 아름답게 솟아오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김 회장의 남다른 추진력이 빛을 본 건 1973년 오일쇼크 때였다. 2000만 달러도 없어 장관들이 외국에 돈을 꾸러 다닐 때 김 회장은 중동 건설시장에 진출해 부족한 외화를 벌어들이기로 다짐했다. 그의 나이 29세 때 일이다.
현대건설보다 3년이나 빨리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그는 첫 번째 공사로 미 육군 공병단 지중해사령부가 발주한 주베일 해군기지공사를 낙찰 받는데 성공했다. 총 공사비만도 4800만달러에 육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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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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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외환은행의 자본금이 6250만달러에 불과했으니, 주베일 해군기지공사는 그때까지 국내 건설업체가 해외에서 수주한 공사로는 최대 규모였다. 이 단 한 건의 공사로 김 회장은 1800만달러 순익을 올렸다.
이것을 기점으로 동부건설은 1980년 중동에서 사실상 철수하기까지 5년간 총 20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건설업계 순위도 600위에서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창업 10년 만에 30대 그룹 반열에 오르면서 재계를 바짝 긴장시켰다.
동부건설이 본격적으로 사업다각화에 나선 건 1983년 즈음이다. 반도체가 미래산업의 쌀이 될 것으로 내다본 김 회장은 미국 몬산토사와 합작해 국내 최초로 반도체용 실리콘웨이퍼 제조업체를 세웠다.
이어 김 회장은 동부투자금융과 동부생명을 잇달아 설립했다. 또한 여객운송업만을 하던 동부고속에 물류업, 하역업, 창고업을 추가하여 육상운송전문 종합운송회사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김 회장은 M&A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1983년 삼화그룹으로부터 한국자동차보험(현 동부화재) 주식 전량을 인수 때 일이다. 당시 한국자보의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정부가 살려보겠다고 나섰다가 꼬리를 내리고 도망친 유일한 회사였다.
당시 한국자보는 매출 2000억원에 적자만 2000억원으로 보험금 지급불능 상황이었다. 게다가 강성노조로 인해 관리부재 상태였다.
그런 회사를 김 회장이 사겠다고 나섰다. 물론 주변사람들은 “정부조차 손 든 회사를 개인이 어떻게 운영할 수 있겠느냐, 포기하라”며 만류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결국 한국자보를 인수한 김 회장은 사업정상화에 매진, 결국 오늘날의 손해보험업계 ‘빅3’인 동부화재를 만들었다.
※[50대기업 대해부] 다음 순서로 동부그룹의 지배구조 편이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