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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에게 ‘전쟁참여’ 역설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경제인’들]…현대그룹 회장 부친 현준호 편

박지영 기자 기자  2009.11.26 11: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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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8년 만에 나온 <친일인명사전>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지난 8일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는 친일행위자 4389명의 ‘행적’이 고스란히 재현돼 있다. 후손들 반발이 거센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몇 유족들은 <친일인명사전>을 입수해 꼼꼼히 살펴본 뒤 민족연구소를 상대로 출판물 명예훼손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반면, ‘친일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모른 체 시치미 떼는 몰염치 후손도 있다. 대부분 경제인 친일행위자 유족들이 그렇다. 친일파 명단에 오른 경제인은 △박승직 두산그룹 창업주를 비롯해 △현대그룹 현준호(현정은 회장 조부) △보광그룹 홍진기(홍석규 회장의 조부) △김연수 삼양그룹 창업주 등 모두 55명.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경제인들의 친일행위에 대해 차례대로 알아봤다. 다음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친조부 현준호의 친일사례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친할아버지인 현준호도 친일인명사전에 이름 석자를 올렸다. 현준호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9호의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고문 또는 참의로 활동한 행위’를 한 인사로 꼽힌다.

중·일전쟁 발발 후 총독부가 조직한 시국강연회 연사로 나선 현준호는 태평양전쟁 말기까지 징병제 홍보와 학병지원 권유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공로자 명단에 포함된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다.

그러나 현준호의 친일행적에 대한 의견은 현재까지도 극명하게 엇갈린다. 그가 조흥은행의 전신인 호남은행을 설립했단 이유에서다.  

현준호의 일생을 되짚어 봤다.

◆중일~태평양전쟁 때까지 친일활동

현준호는 1889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에서 현기봉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 현기봉은 중추원 참의를 지낸 호남지방의 대지주였다.

담양의 창평영학숙을 거쳐 서울 휘문의숙에서 신학문을 배운 현준호는 1912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법과에 입학했다. 그가 다시 고국 땅을 밟은 건 그로부터 5년이 훌쩍 지나서였다.

부친을 도와 1919년 4월 해동물산주식회사를 세운 현준호는 1920년 8월 호남은행을 설립, 전무 취체역(지금의 이사)를 맡으면서 독자행보를 걷기 시작한다. 그의 친일행적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는 것도 여기에 있다.

조흥은행의 전신인 호남은행은 △일본어를 쓰지 않고 △일본인을 채용하지 않으며 △일본 관련 단체에 융자하지 않는 ‘3무(無)은행’으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준호는 그 흔한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었다. 때문에 일각에선 그를 ‘항일인사’로 구분 짓기도 한다.

현준호가 본격적인 친일활동을 한 건 1930년 초 중추원 주임참의에 오르면서부터다. 특히 그의 친일사례가 돋보였던 건 1937년 7월 중일전쟁 때다.

당시 현준호는 조선총독부가 조직한 시국강연반에 참여해 전국을 돌면서 전쟁지원을 역설했다. 또 이듬해인 1938년 8월에는 조선총독부 시국대책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의 친일행동은 태평양 전쟁 말기까지 계속됐다. 징병제 홍보와 학병지원을 권유하는가 하면 조선임전보국단에도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준호의 친일행위가 멈춘 것은 1950년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다. 당시 광주 모처에서 숨어 지내던 그는 결국 북한군에 붙들려 살해당했다.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피살

한국전쟁은 현준호의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았다. 생전 6남4녀를 둔 현준호는 한국전쟁 때 두 아들을 잃었다.

△첫째아들 현영익은 국회 의사과장을 지내다 한국전쟁 때 사망했고, △국군 중위였던 둘째아들 현영직은 한국전쟁 시절 전방부대에 차출돼 포로로 잡혀있다 스스로 돌에 부딪혀 자살했다.

반면 나머지 자녀들은 대부분 재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중에서도 3남이 눈에 띈다. 현준호의 셋째아들이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이며 현 전 회장의 둘째딸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기 때문이다.

현 회장은 1955년생으로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1976년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과 결혼해 현대가와 혼맥으로 연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