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통령이나 대기업 회장 등은 외부에 비쳐질 때는 대체로 웃는 표정이나 진지하되 온유한 표정이다. 일반인이 그들의 화난 표정을 보는 것이란 쉽지가 않다. 최고의 리더들이 불같이 화를 냈다는 것은 그 사실만으로도 흥미진진한 뉴스다. 화내는 모습을 목격하는 이들은 주로 참모, 측근, 수행원, 부하직원 등인데, 리더가 이렇게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많은 이들은 궁금해 한다. 뭔가 근원적이고 총체적인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화를 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의 분노는 그 수하 조직으로 하여금 발 빠른 대처를 촉구한다. 하지만 이런 조직은 왠지 세련돼 보이지 않는다. 후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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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구본무 LG 그룹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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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사격장사고 日총리에 듣고 ‘망신’
일국의 대통령이 국내 사건사고의 보고를 보고 라인이 아닌 다른 나라 고위층에게서 들었다면 얼마나 당황했을까.
지난 14일 부산에서 발생한 실내사격장 화재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은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 참석차 싱가포르를 방문 중에 하토야마 일본 총리에게 관련 소식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부산에서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는 정도는 보고를 받았지만, 정작 사상자들 중 상당수가 일본인 관광객이라는 외교적 문제 가능성은 일본 측으로부터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토야마 총리는 사고 수습에 대한 협조를 요청했고 이 대통령은 면담 후 아무런 보고도 없었던 관계자들에게 화를 냈다고 한다. 일본 언론에서 이례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속했던 우리 측의 대응의 이면에는 이 대통령의 불같은 호통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달 6일 발생한 청와대 행정관 욕설 소란과 관련해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윤진식 정책실장을 강하게 질책한 바 있다. 행정관 하나가 다른 공무원에게 업무 협력상 ‘손발이 맞지 않은’ 데 대해 소리를 지르며 강하게 항의한 일이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청와대 직원들의 불미스러운 행동은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며 조직의 위계질서 확립을 지시했다.
◆이건희…제품 폭발에 ‘분노 폭발’
그룹승계와 관련한 각종 문제로 처벌을 받고 그룹 요직에서 물러나 명목상(?) 야인으로 돌아간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이 최근 이례적으로 삼성의 현안에 감정을 폭발시킨 사례가 알려지면서 눈길을 끌었다. 이 전 회장을 격노케 한 사건은 지난달 발생했던 삼성전자 지펠 냉장고 폭발 사고였다.
글로벌 경쟁사들을 압도하려면 품질에서 우위를 점하지 않고서는 세계 1위 기업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 회장의 지론이다. 이 전 회장은 지난 번 폭발 사고를 단순히 냉장고 문짝이 날아간 엽기 사건이 아니라 창업 정신이나 다름없는 ‘관리의 삼성’, ‘품질의 삼성’이라는 모토 자체가 흔들린 대역죄(?)로 판단했던 것 같다.
이 전 회장의 격노에 삼성전자 측은 재빨리 사태수습에 나섰다. 냉장고 21만대 리콜이라는 파격적인 조치를 취했다. 삼성전자는 냉장고 냉매파이프의 서리를 제거해 주는 히터의 연결 단자에서 누전에 따른 발열로 사고가 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삼성전자는 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얼마 전 세탁기가 또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19일 삼성전자 등에 따르면 탈수 중이던 드럼세탁기의 앞문 유리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해 회사가 현재 원인조사 중이다. 이 유리는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강화유리로 상당한 충격을 견딜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사고로 삼성전자가 또 한번 망신을 당했다.
드럼세탁기의 앞 유리가 깨지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유리 제조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지만, 냉장고 폭발 때문에 한차례 큰 홍역을 치렀던 삼성전자로선 식은 땀 날만 한 일이다. 이같은 제품 결함 사고가 하필 창사 40주년인 올해 이렇게 발생하고 있는 점 때문에 삼성전자는 이래저래 난처하다.
내년은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전 명예회장의 탄생 100주년이다. 삼성은 더 이상 이런 망신은 없어야 한다고 다짐 또 다짐하는 중이라고 한다.
◆구본무…야구단 비리색출 진두지휘 그룹 총수가 계열사 실적이 부진해서 크게 화를 내는 경우는 흔히 있지만,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격노한 경우는 좀 달랐다. 야구단 비리를 잡아내라고 화를 냈었다.
2008년 LG그룹의 구 회장은 야구단 LG트윈스에 대한 특별감사를 직접 지시했다. 구단 내 끝없는 잡음을 보고 받고 이를 참지 못한 것이다.
LG트윈스의 각종 비리문제가 더 커지게 되면 정도경영의 기치를 내건 LG에게도 불똥이 튈 것을 염려한 탓이다. 감사팀은 한 달 동안 여러 문제점을 조사했다. 이 기간 동안 감사팀은 부서별 부정·비리 색출에 열을 올렸는데 홍보, 마케팅, 스카우트, 경영지원 등이 조사대상이었다.
△방만한 법인카드 사용 △성인 입장권 1매를 어린이 입장권 3매로 나눠 집계한 관중 수 부풀리기 △특정 이벤트 업체와의 유착관계 △계약관련 부정비리와 뇌물수수 △용병계약 관련 커미션 비리 △구단내 자금세탁비리 등이 감사를 통해 드러났다.
당시 구단주는 구본준 LG상사 부회장이었지만 그룹의 총수인 구 회장이 직접 나섰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끌었다. 특히 구 회장은 평소 비서들도 많이 대동하지 않고 다닐 정도로 소탈한 성품으로 알려졌는데, 이처럼 강하게 권위를 발동한 것은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고 생각했다는 방증이라는 것.
대통령이나 그룹총수가 직접 나서서 화를 내면 일이 빨리 진행되고 그만큼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를 달리 생각해보면, 최고 리더가 직접 나서야만 일이 빨리 혹은 제대로 진행되는 문화가 아직도 여전한 것 같다. 조직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가동한다. 대처 시스템이 얼마나 제대로 가동되느냐에 따라 조직의 선진화 정도를 가늠할 수도 있다. ‘최고 리더의 격노’와 ‘원활한 대처 시스템’, 세련된 조직이라면 최고 리더가 고함을 치며 화를 내는 일은 불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