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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길’ 못 뚫은 ‘반쪽 추진력’

이광표 기자 기자  2009.11.18 15: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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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지난 2002년 7월,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기자는 민화협의 초청을 받아 금강산 여행길에 오른 기억이 있다. 같은 해 6월29일 서해교전으로 6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는 사태가 발생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분노한 보수단체 회원들은 속초항 선착장 앞에서 금강산관광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머쓱했던 기자와 다른 일행들은 시위자들의 저지선을 겨우 뚫고 예정됐던 관광길에 올랐었다.

당시 북측의 공식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분단 이후 첫 정상회담을 성사 시킨 DJ정부는 남북 평화무드를 상징하는 유일한 대북관광 상품이었던 금강산관광을 중단 없이 계속 단행했고, 행여나 중단될까 노심초사했던 현대그룹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광표 기자.>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금강산 길은 막혀 있다.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대북사업을 진두지휘하던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도,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DJ도, 금강산 길을 열게 해준 당시 정권의 ‘햇볕정책’도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곳에 가 있다.

지난해 7월 금강산 관광객이 북측 초병에 의해 피격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직후부터 전면 중단된 관광길은 1년4개월이 지난 지금도 좀처럼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더구나 오늘은 금강산관광이 시작된 지 11주년을 맞는 날. 지금 가장 침통한 곳은 현대그룹이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늘도 ‘11주년 기념식’ 행사 참석을 위해 금강산을 찾은 것으로 전해졌지만, 찬바람만 불어대는 그 곳에서 현 회장의 마음은 편치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3개월 전 현 회장이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 석방과 함께 금강산 및 개성관광 재개 등에 대해 합의한 뒤 금의환향 속에 방북일정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까지만 해도 기대감에 취했던 것이 사실이다.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서해에서 ‘교전의 망령’이 7년 만에 재현되며 현대그룹의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핵심계열사인 현대아산은 금강산관광 중단 장기화로 존립 위기에 놓여있다. 이로 인한 매출 손실은 2033억원에 달하며, 지난해 12월 중단된 개성관광 피해까지 더해질 경우 매출손실은 2236억원에 이른다.

총체적 난국에서 벗어나고자 지난 4월 이후 200억원 유상증자와 임직원 급여 삭감·희망퇴직 등의 구조조정을 통해 1084명에 이르던 직원 수도 현재 400명으로 줄어든 상황.

정부가 박왕자 씨 피살 사건에 대해 원칙론만 내세우며,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약속, 신변안전보장 장치 마련 등 3대 조건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관광 재개는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도 현대그룹으로서는 야속할 따름이고,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도 없는 것이 답답할 노릇이다.

매출 손실을 만회하고자 현대아산은 국내 공사 수주 및 ‘생태관광상품’ 개발 등에 애를 쓰고 있지만 별다른 효과를 못보고 있다.

돌파구를 못 찾고 있는 현정은 회장은 특유의 인내심으로 난국을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했지만, 이를 바라보는 재계 안팎의 시각은 ‘냉담함’을 벗어나 ‘측은함’마저 엿보인다.

물론 현 회장이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남편 고 정몽헌 전 회장이 오랜 시간 피땀 흘려 일궈 놓은 대북사업을 순순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재계 중론이지만, 슬로건만 있을 뿐 아무런 대안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현 회장의 ‘추진력’을 아쉬운 대목으로 꼽을 수밖에 없다. 지난 8월 전 국민의 관심사이자 우리 정부도 쉽게 나서지 못했던 유모 씨 석방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까지 성사시키는 등 커다란 선물을 안고 돌아왔음에도 정작 현대그룹에 안겨 줄 선물은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생색만 내고 실속은 못 챙긴 격이 되 버린 것.

현 회장이 북에서 커다란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온 만큼 우리 정부에 더 큰 목소리를 냈더라면, 당국과 주기적인 접촉을 통해 관광 재개를 위한 노력을 더 발 빠르게 시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북한 당국과의 대화는 성공시켰음에도 정작 우리 정부와의 대화는 실패한 아이러니한 상황은 결국 북에서는 통하고 남에서는 통하지 못한 현 회장의 ‘반쪽짜리 추진력’과 ‘대화 방식’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부쩍 잦아진 혹독한 추위만큼 누구보다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을 현 회장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가겠느냐만, 그의 따뜻한 미소를 언제쯤 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