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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90년만의 ‘우측통행’ 예산은?

김병호 기자 기자  2009.10.08 12: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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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임경제] 10월 들면서 출퇴근길이 혼란스러워졌다. ‘우측보행’ 시범시행 때문이다. 제도를 잘 모르거나 좌측통행에 익숙해있던 시민들이 많아 혼선이 반복되고 있다.

전철·기차역 에스컬레이터가 우측통행 방식으로 바뀌고 있고, 통로 곳곳에 우측통행 안내판이 붙어 있다. 하지만 좌·우측 양 쪽으로 진행하는 시민들로 출퇴근길은 여전히 북적인다. 안내표지판과 홍보 캠페인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이번 조치는 차도는 우측, 보도는 좌측으로 진행하는 종전의 교통관습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우리의 경우 미국(우측)과 일본(좌측)의 교통 및 보행 문화가 혼재된 것이라서 일찌감치 바로잡아야 했다는 여론이 있었고, 특히 좌측통행이 1921년 일제강점기 때 시행된 것이라는 역사성까지 부각되면서 우측통행 필요성은 더 부각됐다.

이런 필요성이 제기됐음에도 준비는 그다지 철저하지 못한 것 같다. 예산도 제대로 책정하지 않은 채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자는 주먹구구식 시행이라는 빈축마저 일고 있다.

출퇴근길이 복잡하기로는 전국 최고인 서울 전철 1~4호선. 이 4개 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메트로는 ‘우측보행’ 캠페인의 준비 미비에 대한 지적을 매우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서울메트로는 지난 4월부터 5개월간 준비를 거쳐 시범시행에 들어갔다고 한다. 아무리 작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이를 시행하기 위해선 여건을 충분히 고려한 다음 타당한 준비기간을 정하고 이에 합당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이번 ‘우측통행’은 준비가 많이 미흡한 것 같다. 무엇인가에 쫓기듯 무리한 시행절차를 밟고 있는 인상마저 풍겼다.

‘우측보행’ 추진 예산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했다. 전철 1~4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예산도 책정이 되지 않았고 시설 개선비용이나 홍보비용은 주어진 예산에서 쪼개고 아껴서 만들고 있다”고 답했다. 캠페인과 관련 전철 역사 내 각종 시설 변경이나 캠페인 홍보가 제대로 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거의 다 되지 않았느냐”고 반문까지 했다.

‘개선책이 있고 시행할 목적이 있다면 시설 변경은 물론이고 충분한 홍보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행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해선 “죄송하지만 답변사항이 아니다”고 피했다.

이번 캠페인과 관련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할 책임자의 답변은 이처럼 실망스러웠다.

서울메트로가 지금껏 우측보행 관련 시설물변경과 홍보비용 등에 쓴 돈은 7800만원 정도. 이들 입장대로라면, 이번 시범운영 시행에 들어간 돈은 기존 예산에서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었기에 충분할 수가 없다. 기존 예산을 쪼개서 써야 하는 형편이다 보니 제대로 홍보가 될 리도 만무하다.

5, 6, 7, 8호선을 운영하고 있는 서울도시철도공사 측 사정도 비슷했다.

이곳 관계자는 “짧은 시행 정책으로 예산책정도 되지 않았다”며 “현재 역사 내 인쇄물이나 직원의 소비재 예산을 절약해 우측보행 시행 예산을 충당하고 있고 4000만원 정도 예산이 들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시설개선비용 견적서를 오늘 받을 예정인데 좀 늦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금 견적서를 받고 하루에 하나씩 개선할 것이면 왜 굳이 10월1일부터 시행했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별 불편함이 없다고 알고 있다”라고 답했다.

전철 입출구에 에스컬레이터가 하나뿐인 곳은 앞으로 어쩔 셈인지도 궁금한 일이다. 이에 대해서 관계자는 “우측통행 시행중이지만 예산안 부족으로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오른쪽으로 걸으면 보행속도가 1.7배 빨라지고 충돌횟수도 24% 줄어들 것”이라며 우측통행을 독려하고 있는 국토해양부지만, 우측통행 예산에 대해서는 “우리 관할 아니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교통 기관과 정부는 각각 ‘겨우 쪼갠 예산이다’, ‘우리 관할 예산 아니다’는 식으로 일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시민들은 혼선과 시행착오를 충분히 겪고 난 다음에야 겨우 우측통행에 익숙해질 것 같다.

우측통행의 필요성을 많은 시민들이 인정한다. 때문에 전철·기차역 관계 기관들은 시민들이 우측통행에 보다 빨리 익숙해질 수 있도록 시설물 변경과 적극적인 안내와 홍보 등에 심혈을 기울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