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여의도25시] 김영춘에 화낸 박형준, 생활기스 입은 킹콩

킹콩처럼 포효하기 전에 킹콩 글래스 붙이고 찾는 모습 더욱 절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21.01.14 09:54:30

[프라임경제] 일본어 표현이라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을 면할 길 없지만, 중고 IT 제품이나 가구 등 생활용품을 거래할 때 흔히 사용하는 표현 중에 '생활기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흠집이나 상처를 가리키는 '기스'라는 일본어 단어를 붙여 생활에서 흔히 날 수 있는, 그렇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물건을 내놓기엔 좀 모호한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물건 상태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책임에서 벗어나고 상대의 구매 판단을 돕습니다.

참고로 이 생활기스를 막기 위한 궁리가 특히 비싸면서도 손을 많이 타는 휴대전화 분야에서 발달하고 있는데요. 강화유리가 그것이지요. 고릴라 강화유리(고릴라 글래스, 흔히 '글라스'라고 발음합니다)니, 킹콩 강화유리니 하는 다양한 제품들을 휴대전화 표면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파이어 강화유리의 경우 인조 사파이어 분자를 활용해서 만든다고 하는데요. 

이번에 박형준 동아대 교수와 김영춘 전 국회 사무총장 사이의 거친 설전을 보노라니, 생활기스라는 표현이 떠올랐습니다. 이들은 부산시장 보궐선거 예비후보로 나란히 등록을 한 상황입니다. 박 교수가 국민의힘 소속, 김 전 사무총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지요. 

김 전 사무총장이 12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박형준 (예비)후보는 해운대에서 가덕도까지 15분에 갈 수 있는 공약을 제시했는데 김 (예비)후보의 생각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그야말로 빌 공자, 공약이 될 수밖에 없다"라고 짠 점수를 매긴 게 화근이었습니다.

김 전 사무총장은 "어반루프(첨단교통기술)라고 미국에서 아직은 실험실 수준에서 이야기를 해운대~가덕도 30분 이렇게 공약을 한다는 건 아마도 10년 이내에는 절대 성사되기 어려운 이야기"라고 전제하고 "지금 1년짜리 시장선거에 나오면서 그런 공약을 1호 공약으로 내세운다는 게 저로선 조금은 좀 한심하다랄까, 어처구니가 없다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도 말했습니다.

좀 과격하고 야박하게 발언한 셈이긴 한데요.

박 교수 측이라고 가만 있지 않았습니다. 13일, 절치부심 끝에 장문의 반격 자료를 언론에 뿌린 것이지요.

박 교수는 여기서 어반루프의 기술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지금 발전 속도로는 그렇게 먼 꿈만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는데요.

문제는 이런 조리있는 반박에 그치지 않고 두 갈래의 강경한 반격을 감행했다는 대목입니다. 하나는 거친 언사로 상대의 '무지'를 몰아붙인 것이고, 또 하나는 상대의 문재인 정부와의 교감 문제에 대한 '의구심'을 후벼팠다는 것입니다.

박 교수 진영에서는 "도심형 첨단교통기술(어반루프)은 문재인 정부가 2018년 이미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혁신 성장 동력 4개 중 하나로 선정한 기술"이라며 "자기 정부에서 핵심 미래성장 동력으로 이미 추진하고 있는 첨단 과학기술마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부정하면서 비난에 급급한 태도"라고 언급했습니다.

'너희 대장이 관심 두는 요새 핫한 기술도 모르냐'는 핀잔인 셈인데, 김 전 사무총장이 근래 총선에서 민주당이 부산권에서 대거 패배한 상황에 동네 맏형으로 청와대 볼 낯이 마땅찮았을 것이라는 일각의 분석을 고려하면 대단히 뼈저린 지적이지요. 

그러므로 박 교수가 이렇게 '자기 정부' 운운하며 공격한 것은 김 전 사무총장을 두고 도대체 가덕도 신공항을 제대로 완수해 낼 '여당 메리트'가 있는 정치인인지 바탕부터 의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여기까지는 복수혈전이었다고 치고요. 문제는 그 다음인데 너무 과하게 치고 나가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원조 친노나 원조 친문 논에 정치의 비루함을 새삼 느낀다"고 비꼬았던 점이라든지, "무지와 오만이라는 바이러스에 깊게 감염된 것 아닌가" 등 그야말로 열띤 공세가 이어졌습니다. 

반격을 위해 배포한 글의 제목부터 "무지가 가져올 사회적 대가 우려" 등 표현을 담았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난 화를 쏟아낸 셈입니다.

주지하다시피, 박 교수는 모 종편의 '썰전'에 패널로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라고까지 단언하거나 그가 말하는 게 다 옳다든지 평가할 수는 없지만, 보수 입장에서 차분히 설명도 하고 반박도 하는 모습이 좋은 평가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가 근래 부산시장 보선 와중에 호감을 많이 얻은 것도 이런 매력으로 보수 지지층과 함께 중도표심을 끌어당긴 게 아니냐는 풀이가 유력하지요.

물론 '교수 출신이라서'라며 강경하고 도에 지나치게 화를 쏟아낸 이유를 찾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인신공격을 당한 것이면 차라리 모를까, 열심히 외부에 물어보고 나름대로 공부도 해서 캠프 식구들과 의기양양 내놓은 성과물에 말도 안 된다는 식으로 공격을 받았으니 마치 애써 쓴 논문이나 궁리해 내놓은 학설에 공격을 받은 것처럼 학자적 자존심 측면에서 반응한 게 아니냐는 추측인데요.

그렇다고 손치더라도, 앞서 말한 박 교수만의 장점을 스스로 상당히 허물어 버릴 수 있는 정도로 화를 강하게 낸 것까지는 '완전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여전히 남습니다. 그럼 아마 공약을 서로 쏟아내고 끊임없이 디스하는 논문 전쟁 비슷한 분위기로 갔어야 하지 않냐는 반론인 거지요.

그렇다고 상대방과의 치열한 접전에 신경이 너무 곤두서서 지나치게 발끈한 것이라고 보기에도 모호합니다. 예를 들어, '국제신문'이 지난해 12월26일~28일 '폴리컴'을 통해 진행한 부산시장 후보적합도 조사에서 박형준 교수가 28.3%로 1위였을 때, 김영춘 전 사무총장은 16.9%로 나타났거든요. 보수인 국민의힘 정치인인 이언주 전 의원 15.3%이나 박성훈 부산시 경제부시장 5.0% 등을 모두 고려해도 상당한 표 차이입니다.

박형준 교수와 김영춘 전 사무총장의 가상대결에서도 박 교수의 우세였죠. 박 교수의 지지율은 40.1%를 받아 27.0%인 김 전 사무총장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습니다. 김영춘 전 사무총장과 이언주 전 의원의 대결은 오차범위 내 접전이었습니다(이 조사는 부산시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 유·무선 비율은 유선 18.8%, 무선 81.2%로 응답률은 4.3%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가능).

2등의 불만이나 접전 라이벌이 느끼는 초조함이나 신경질에서 거칠게 나섰다고 생각하자니, 그야말로 '오차범위 밖의 판단'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1년짜리 공약으로는 안 된다고? 10년은 더 걸릴 거라고? 난 (이제부터 시장 줄창) 3선 하려고 하는 건데?"라고 가볍게 받아치거나, 그래도 분이 덜 풀린다면 "나는 1년짜리 선거 떨어져도 다음에, 다다음에 또 나와서 어반루프 할 건데, 김 전 사무총장은 이번 보선에 지면 다음 시장 선거 가능하려나?" 정도로 위트있게 해치우면 어땠냐는 소리가 그래서 나오는 거지요.

박 교수가 MB 진영 인물 중엔 드물게 부정에 연루돼 처벌받거나 하지 않아 보수파 인물난에서 단연 두드러집니다. 아울러 그는 과거 총선에서 두 번 패배한 바 있는데, 두 번 모두 당내 계파 갈등으로(남만도 못하다는 친박 대 친이 갈등이었죠) 치열하게 다툰 것을 같이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 문제적 갈등 와중에도 명시적으로 문제가 드러난 게 없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학생 운동을 치열하게 했던 이력도, 보통의 민주당 출신 정치인 대비 부채 의식을 느낄 일 없다는 그의 장점이지요.

어쨌든 내놓고 디스할 만한 소재 없이 원만하고 합리적인, 점잖은 중도 확장성의 인물에서 스스로 상대방의 공세 한 방에 '이게 웬 일?'이라는 상황을 마다치 않고 나오다니 그야말로 여러모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 전 사무총장이 의도한 도발이었든 아니든, 결국은 상대 진영에는, 그야말로 의미있는 생활기스가 이번에 난 셈입니다.

박 교수로서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박 교수가 정치권에 오래 인연을 두고 살면서도 그렇게 온갖 크고 작은 생활기스를 감수하고 무시하면서 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이번에 이런 대략 난감한 실책을 했다는 시각에서 내다 보자면, 생활기스 나지 않게 스스로 마음에 킹콩 글래스 한 장쯤 붙여야 부산시장 보선을 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람들은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그런 킹콩처럼 담대한 인물의 이미지, 부산을 살릴 기회를 움켜 잡을 때 킹콩처럼 포효할 과단성을 박 교수에게서 기대하는 것이지, 다소 심한 언사의 상대를 바로 묵사발내는 킹콩 같은 모습을 바라는 건 아닐 겁니다. 그런 정치인은 경상도 말로 천지삐까리 쌔고 쌨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부산 미래를 같이 걸머질, 10년 아니라 100년 미래를 의논할 여야 정치인들의 '선의의 경쟁'을 기대해 봅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