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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달의 코칭 이야기 26]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허달 칼럼니스트 | dhugh@hanmail.net | 2020.08.07 16:32:48

[프라임경제] 서울에서 한가롭게 코칭 활동하던 어느 주말의 일이다. 아내와 함께 안성 난실리를 다녀왔다.

교외(郊外)에 나가 깊어 가는 가을의 정취를 맛보자는 뜻도 있었지만, 난실리에 위치한 '조병화 문학관'에서 개최하는 친구 김광규 시인의 시 낭송회가 있다 하길래, 오랜만에 친구의 얼굴도 보고 그의 부드럽고 갈앉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작시 낭송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김 시인과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조병화 선생께 함께 국어 작문(作文)을 배운 동기동창이자 누하동, 적선동, 서촌(西村)을 오가며 어린 시절을 지낸 오랜 친구다. 뜻 밖의 곳에서 예상치 않은 친구를 만나 그도 반가웠던지 "별 데를 다 다니네." 하며 씨익 웃어 보였다.

모두 여섯 편의 자작시(自作詩)를 낭송하고 낭송회는 끝났는데,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기어코 그를 우리 집에까지 납치하여 와인 잔을 몇 순배 기울이고 돌려보냈다.

그날 낭송한 그의 시 중 가장 마음에 남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인용한다.

'4.19가 나던 해 세밑 /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 입김 뿜으며 / 열띤 토론을 벌였다 /(중략)

/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중략)

/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 부끄럽지 않은가 / 부끄럽지 않은가 /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자기기만(Self-deception)의 상자 속에 숨어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에 잠시 연민하는 서글픔을 연출하다가, 삶의 늪으로 되돌아 가는 '혁명이 두려운 중년'이 된 시인과 우리들을 보라.

4.19가 발발한 1960년은 우리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다. 당시는 3.15 부정 선거가 젊은 피를 끓어 올렸고, 일주일 뒤 4.26 이승만 대통령의 사임과 하야, 뒤 이은 1년 여의 정치적 혼란, 그 결과인 다음 해의 5.16 혁명(革命)에 연결되었다. 최근 8.3 자(字) 조선일보 '최보식이 만난 사람' 인터뷰 기사에는 당시를 회고하는 원로 언론인 안보길 선생의 가슴 뭉클한 글 한 구절이 보인다.

"이승만은 스스로 사퇴함으로써 자신이 만든 자유민주 체제를 지켜냈던 것이다. 그는 장제스 대만 총통의 위로 전문에 '나는 위로 받을 이유가 한 가지도 없소. 불의(不義)를 보고 일어서는 똑똑한 젊은이들과 국민을 얻었으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소'라는 답신을 보냈다."

이로부터 한 갑자(甲子)가 지난 오늘, 어처구니 없는 집권 세력의 4.15 전방위 부정선거 의혹이 짙어 가자, 바로 그 '불의를 보고 일어서는 똑똑한 젊은이들과 국민'이 뒤늦게나마 자기기만(自己欺瞞)으로부터 깨어나, 전국적인 블랙 파워 운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만리타향에서 유튜브를 통해 착잡한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제 80대에 들어선 우리 4.19 세대의 소회(所懷)를 묻는다면? 차라리 폐부 깊숙한 자책(自責)에 가깝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어쩌다 나라를, 우리 아이들을, 거악(巨惡) 앞에 이 지경까지 무방비로 방치(放置)하였더란 말인가?'

'리더십과 자기기만' 책 소개 일러스트. ⓒ 프라임경제

미국 아빈저 연구소라는 곳에서 출간한 '리더십과 자기기만(Leadership and Self-deception, Out of the Box)'이라는 책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기내면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외면하는 자기배반(Self-betrayal)의 순간, 자기기만의 상자 속으로 들어간다. 그 상자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들 뿐 아니라, 남과 주위 여건을 비난하는 논리까지 만들어 점점 더 깊이 숨어버린다는 것이다.

상자 속에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소용없게 되어버린다. 스스로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일, 남을 변화시키려는 일, 새로운 기술이나 해법을 활용하는 일, 승-승을 위해 진정한 커뮤니케이션을 추구하는 일, 상황에서 손을 떼고 무거래(無去來)를 표방 선선히 물러나는 일 등이 불가능해진다.

내 소견으로는 우리 사회가 모두 자기배반(自己背叛)으로 작심하고, 두터운 자기기만의 상자 속에 들어가 벗어날 생각을 아예 잊고 있는 것만 같다.

코칭은 고객을 상자 속에서 나오게 작용하는 일이므로, 코치는 의당 자신이 상자 밖에 나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상자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먼저 자신이 상자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상황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남을 비난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징조들이 마음 속에서 발견된다면, 이 사람은 자기가 이미 상자 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알아차림의 다음 단계는 상자 밖 장소를 찾는 일이다. 상자 밖에 있는 어떤 관계 또는 기억, 예를 들어, 자신의 마음이 풍요로웠던 상태, 왜곡되지 않았던 상태 등을 기억해 내고, 그 'Egoless' 상태에 힘써 머물면서 주어진 상황을 상자 밖 관점에서 새롭게 바라보는 것이다. 이른 바 관점의 전환(Perspective Change)이다.

관점의 전환이 이루어지면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회복(恢復)된' 내면의 소리를 ‘다시’ 듣게 된다. 이를 망설임 없이 실행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실행하지 못하게 되면 다시 자기배반/자기기만의 늪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자카르타의 예측하기 어려운 팬데믹 상황에 벌써 6개월째 '집콕'하면서, 홍익학원의 '몰라 명상' 프로그램을 유튜브를 통해 흥미롭게 섭렵하였다고 이미 소개하였다. 윤홍식 원장의 양심론 강의에 따르면, 주어진 상황에서 생각, 판단 이전 상태에서 일어나는 내면(內面)의 소리가 곧 '참나', '성령', '도심(道心)'이 발(發)하는 양심의 코드 언어(Logos)이며, 이를 상자 속에 가두는 자기기만이 바로 탐진치(貪瞋痴)가 지배하는 에고(Ego)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는 것이다.

명상이라는 말은 바바나(bhavana)라는 범어(梵語)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그 원 뜻은 마음 밭(心田)을 갈아 일군다는(cultivate/develop) 뜻이라 한다. 마음이 만든 자기기만의 상자를 명상으로 갈아 일궈 벗어내고, 늘 청정한 자리에 서서 내면의 소리를 들어 준행(遵行)하는 일, 하여금 주위 모두에 미치게(汲) 하는 일, 불자(佛子) 코치가 원(願)을 세워 부여 받은 스스로의 책무이다.

몰염치한 거악(巨惡)에 대항하는 노력이 기껏 자신과 고객을 상자로부터 탈출시키는 것이라고? 과연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석연치 않다. 뱅모 박성현이 오늘 자 '세뇌탈출'에서 일러준 아래 글을 읽고 마음을 위로해 보자. 저 유명한 '반지의 제왕' 저자이자, 옥스포드의 시인, 철학자인 J.R.R. Kilein의 글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악을 물리치려면 거대한 권력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진실은 전혀 다르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행동들이 악을 제압한다. 따듯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작은 행동들이 악을 죽인다.'


1943년 서울 출생 / 서울고 · 서울대 공대 화공과 ·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 SK 부사장 ·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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