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기자수첩] '공익'이라며 '소수' 짓밟는 정부, 사회계약론을 아는가

정부 "분양가상한제 조합원의 손해보다 공익이 크다"…조합원도 '국민'

장귀용 기자 | cgy2@newsprime.co.kr | 2019.08.19 11:45:22
[프라임경제] 정부가 입법예고한 분양가상한제가 주요포털 뉴스검색순위 10위권에서 내려올 줄을 모른다. 북한발(發) 미사일 문제나 대(對)일본 문제 등 시끌벅적한 이슈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고 있다. 

10월부터 적용될 분양가상한제는 '투기과열지구'를 대상으로 시행될 예정인 제도로 아직 확정된 바는 없지만 통상 현재 분양가 수준에 대비해 70~80% 수준까지 분양가를 낮추도록 종용하는 정책이 될 예정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자산 중 부동산 비율이 높은 문제와 부동산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문제는 그 누구라도 인정하는 바이고, 또 해결해야한다는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특정 집단이나 사람을 겨냥해서 손해를 주는 방식의 제도는 위험한 접근이다. 국민들의 편 가르고, 특정 지역이나 인물을 타도대상으로 삼는 홍위병(紅衛兵)식 접근은 지나치게 선동적이고 감정적이다.

정부에서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발표하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지에 관해 "이미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한 단지에 대해서는 분양가상한제 적용이 불가한 문제가 있다"고 짚은 것은 수단을 강구해서라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단지까지 분양가상한제를 소급적용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에 다름 아니다.

이미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은 단지들은 주민들이 이주가 완료되고 철거가 시작돼, 주민들이 돌아갈 곳이 없다. 철거가 시작됐으니 사업을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고스란히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기자가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을 돌아보면, 대다수 노후 주택의 조합원들은 1주택보유자인 노령세대로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거주하면서 고향으로, 고향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주비와 분담금을 겨우 구해 새 아파트에 살 생각에 가득 차 있던 이들을 몰아세우는 정책을 지칭해 국민을 위하는 정책이라 하는 것은 넌센스다.

정부는 시세차익을 노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전매제한을 10년으로 둔다고 했지만, 교육·문화·경제·교통 등 모든 인프라가 집중되어 있고 또 향하도록 장치되어버린 강남권과 서울지역에 전매제한 10년은 큰 걸림돌이 아니다.

정부에서는 "관리처분인가에 포함된 예상 분양가격·사업가치는 법률상 보호되는 확정된 재산권이 아닌 기대이익에 불과하다"며 "국민의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이 조합원 기대이익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루소는 그의 저서 사회계약론에서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국가에 내주고 얻는 이득에 대해 가장 작은 이득을 얻는 사람조차 국가에 권리를 내주기 이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권리와 이득보다는 많은 이득을 얻을 때, 국가의 권력과 법은 정당성을 얻는다"고 설명하고 있다.

지금 정부가 이야기하는 국민주거안정이라는 공익이 30년이 넘도록 한 곳에서 살아온 1명의 조합원이라도 절망에 빠트릴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신중히 검토되어야 함에 마땅하다.

모든 것을 양보해서 조합원의 이득은 기대이익일 뿐, 재산권이 아니라는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투기과열지구의 분양가가 분양가상한제로 70~80% 수준으로 낮춰진다고 해서 그것이 국민주거안정에 얼마나 이바지할지도 의문이다.

강남권의 17억원이 넘는 아파트가 70~80% 수준으로 분양가를 낮춘다고 해도 12억원에 달한다. 어느 서민이 12억원의 분양가를 마련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거니와, 청약가점 84점 만점(△무주택 기간 32점 △부양가족 35점 △저축 기간 17점)에서 고득점을 올릴 수 있는 청년들이 얼마나 될지도 궁금하다.

서민도 청년도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국민의 주거안정을 꾀하는 것인지 정부에게 묻고 싶다. 일각에서는 공무원아파트에서 공관이나 관저로, 관저에서 높은 임대료의 집으로 옮겨 다닐 수 있는 고위직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을 위한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고 있다.

공무원임대아파트와 공관·관저에서 지냈으니 무주택기간이 길고, 각종 세제혜택에다 고급 정보까지 독점하는 일부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가 이제는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국민의 배를 가르고 얻은 '저분양'라는 이득으로 '강남'에 영원불멸할 자신들의 성을 쌓기 위함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초과이익환수제도로 이익을 세금으로 걷는 제도가 이미 충분히 마련되어 있는 현 상황에서 서민도 청년도 아닌 '그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오랜 기간 노후 주택을 지켜온 조합원들의 피눈물을 짜내는 정책에서 '대의(大義)'가 어디에 있는지 정부는 대답해야 한다. 

대의(大義)가 제시될 수 없다면 정부는 국민을 대의(代議)하는 기관이 아닌,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뭉친 권력자 집단일 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