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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1983년 KAL기 사건 국제적 의견대립…무역전쟁 타산지석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9.06.10 09:37:51

[프라임경제] 미국과 중국이 벌이고 있는 갈등, 이른바 무역전쟁이 세계 각국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진행 상황과 방향에 따라 그 여파가 만만찮을 것인데다, 두 나라 모두 다른 나라들에게 줄서기를 요구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특히 우리나라의 고심이 당분간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달 하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잠시 들를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아예 1박을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후문입니다.

한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일정을 추진한다는 소식도 있었지만, 결국 이번 달 방한은 불발됐다고 하는군요.

일단 상황이 달라지긴 했으나, 두 나라 정상이 갑자기 각각 한국을 찾는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배경이 무엇인지를 면밀하게 짚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의 와중에 한국 방문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두 나라 모두가 판단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일단 유효해 보이는데요. 실제로, 중국은 시 주석 방한을 접으면서도 한국에 대한 우군 작업 의사를 굳이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중국 당국은 SK하이닉스와 삼성 등 한국 기업들을 불러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협조할 경우 '비참한 결과(dire consequences)'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도 압박을 하고는 있습니다만, 중국이 거칠고 직접적으로 저렇게 나오는 것에 비해서는 그나마 외교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범위 내의 언사라고 할까요? 최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5세대 네트워크상 사이버 보안은 동맹국 통신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고 언급했는데요. 이는 한국 정부와 기업들에게 '화웨이 압박 전선 동참'을 사실상 촉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비정상적인 언사에 어떻게 항의할지의 문제는 차치하고, 미국의 입장에 관해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정할 때엔 다른 나라는 어떻게 대처할지도 참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에 우호적인 국가들로 알려진 영국과 독일 등도 미국의 동맹국 통신 보안 운운하는 요청에 미온적이라고 하는데요. 이런 상황은 비단 이번 상황에 특출난 것이 아닙니다. 즉, 국제외교전에서 기본적인 우군 관계와 개별적 정책에 대한 공동 보조가 때로 엇나가는 게 낯선 것은 아닙니다. 

1983년 소련 상공에 대한항공(KAL)기가 잘못 진입한 바 있는데요. 침략 의사를 가진 군용기가 아니라 민항기임이 확인됐지만, 소련 공군은 경고와 위협 끝에 결국 격추, 많은 사망자를 냈습니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여러 나라가 소련의 비인도적 처사 규탄과 민항기 안전에 대한 의견 취합에 나선 바 있습니다. 국제연합(UN) 무대에서 결의안 추진 등이 검토된 것이죠.

그런데 UN에서 미국의 태도가 우리의 기대치와는 좀 달랐다는 점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당시 서독(이후 독일로 통일)은 '민항기는 어떤 경우에도' 격추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이를 여러 나라가 합심해 선언해야 한다는 확고한 태도를 표명했었죠. 반면, 미국은 여러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모호한 태도였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혈맹으로 생각하는 상황 그리고 당시 냉전이 절정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자유진영의 맹주인 미국의 이런 태도는 좀 의외인데요.

미국은 국제법상 원칙이나 평화 우선 등 거창하지만 추상적 이념보다는 민항기로 위장한 영공 침해 등 다양한 전쟁 가능성에 주목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세계 전반을 전쟁터로 고려하는 냉전시대의 '워게임' 그리고 거기서 승리하려는 큰 전략틀에서 민항기나 승객 안전 같은 이슈는 부차적이었던 셈이죠. 또 그런 미세한 점을 외교적으로 내놓고 조율하는 데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죠. UN 등도 그런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미국 행정부가 이번에 네트워크 사이버 보안을 강조하는 데 여러 나라가 무조건 따르지 않는 것도 1983년의 케이스와 맥락은 같습니다. 그런 우려가 크고, 또 그걸 규제할 수 있다는 '원칙'은 존중하지만 자기 나라가 그걸 꼭 따를지 앞으로도 그런 경우 꼭 특정 편에 설지 미리 명확히 할 것은 없는 것이죠. '자승자박' 우려 때문입니다.

우리 청와대 역시 안티 화웨이로 갈지 여부는 개별 기업의 판단 몫이라는 태도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우리나라가 70년도 채 안 돼 전쟁의 잿더미를 딛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상황에는 미국의 절대적 도움이 바탕이 됐습니다. 한편, 현재의 경제 상황에서 중국과의 협력은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어려운 줄타기 국면이라는 한탄이 요새 여기저기서 나옵니다. 시각에 따라서는 중국에 가까운 판단을 해야 한다는 이도 있고, 미국 위주로 정책 방향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줄타기나 미봉책으로 가자는 견해는 설 땅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상대방을 그때그때 적당히 구슬리려는 데 그치는 줄타기와, 기본적인 입장은 정하지만 선택지에서는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입장을 가급적 오래 활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고전적 경영 및 외교 전략인 '기본으로의 귀환(back to the basic)'을 참고할 만하다는 것이고 그 대표적 사례가 왜 자유의 수호자 미국조차 '민항기는 절대적으로 격추할 수 없다'고 선언하지 않았는지인 것이죠.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이 대미 동맹을 강화하는 토대 위에서 때때로 미국과 관세 등 이슈 줄다리기를 하고, 동시에 중국과도 크고 작은 문제를 당당히 풀어내고 있는 모습도 배울 만합니다.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확신만 상대방으로 얻으면, 구체적 선택지에서 서로 엇갈리거나 해도 무방하고 이는 종잡기 어렵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외교를 상대로 하는 시대에도 막힌다는 것이죠. 

우리나라라고 그렇게 못 할 이유가 없고 미국 대응 전략의 가닥은 그렇게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중국에 대처하는 것은 이미 외교 영역이 아니기에, 그 다음의 일입니다.

겁을 먹고 미국 대책과 중국 대응을 뒤섞거나 빨리 어느 쪽에 길지(붙을지) 정해서 답을 낼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1983년 KAL기 사태 당시 경험에서 그런 맥락을 추출할 지혜, 그리고 그렇게 대응할 힘(경제력)은 있는데 문제는 정책적 의지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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