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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노예선의 비극' 문재인의 3기 신도시 참상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9.05.09 09:09:45

[프라임경제] 노예무역이 횡행하던 시대, 한 선주 겸 선장이 노예 운송상 '손실' 문제로 보험금 청구를 한 케이스가 기록에 남아있다. 이른바 종호 사건(The Zong Case)라고 불리는 이 재판은 운송 중 손해를 다뤘다는 점에서 지금의 교통사고 사망보장과는 좀 다른 것으로 보인다. 생명보험의 모습이나 성격보다는 전형적인 손해보험이었던 셈이다.

선주가 항해 중에 판단해 보니, 이런 나쁜 컨디션으로 노예들을 수송해 봐야 막상 도착지에서 어차피 제대로 값을 평가받을 수 없는 지경이 예상됐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 배는 운송 중 노예가 사망(자연사 내지 병사)할 경우 1인당 30파운드를 받을 수 있도록 보험이 설정돼 있었다.

선주는 급기야 '보험사고'를 스스로 만들어 내기로 한다. 물도 부족한 마당에 이 노예들을 어떻게 살려내서 목적지까지 도착할지 고민을 가볍게 버리고, 그냥 바다에 반쯤 던져 버리기로 한 것. 그리고 보험금을 청구하면 된다는 일거양득의 논리를 떠올린 것이니 대단히 비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제동이 걸렸다. 보험회사에서 보기에는 보험사고를 고의로 만든 정도가 아니라 '보험사기'에 해당한 것. 이 사건을 해결한 법원의 논리가 명쾌하다. "운송 중 노예가 숨진 경우 혹은 그렇게 될 수 있는 경우 보험금 지급이 예정된 것은 맞지만, 물을 부족하게 실었다는 자체가 노예 운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조건이었으므로 보험금 청구 행동(혹은 이를 고민없이 택하는 부수적 행동)은 인정할 수 없다"는 요지다. 

노예도 사람인데 애초부터 물도 제대로 안 챙겨줄 조건이 말이 되느냐, 거기에 심지어 알량한 보험금을 노리고 일부러 죽인다는 게 인간의 도리냐는 꾸짖음은 아마 노예상인에게 가당찮은 헛소리로 치부됐을 것이다. 그렇기에 명확한 재산상 물건에 대한 손해보험 논리만으로도 확실한 징벌을 한 점이 더 돋보인다.

이번에 정부에서 경기도 고양시(창릉)과 부천시(대장지구)에 3기 신도시를 추가 지정했다. 이에 기존 1·2기 신도시 주민들의 불만이 비등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종호에서 벌어진 노예 수장 사건이 떠올랐다. 물론, 많은 사업 그리고 정책 추진 구도에서 누군가는 반사적으로 불이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일은 분명 문제가 크다.

특히 고양시의 일산신도시가 심각하다. 일산은 신도시 사업의 고참이자 상징에 해당한다. 과거에는 압도적으로 좋았고 지금도 주민들의 만족도나 자부심이 나름대로 높으나, 일산은 현재 대규모 업무 단지나 개발 호재가 거의 없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건축 연수가 30년이 다 돼 아파트가 노후화됐다는 점도 뼈저리다. 이런 상황이 맞물려 서울 집값만 오르고 타지역은 고통 분담만 하는 상황에 '깡통전세 우려'의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보증기관이 대신 돌려주는 보상반환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구역 중 하나가 이 일산을 품고 있는 고양시라는 점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이런 터에 서울에서 더 가까운 창릉에 3기 신도시 운운하는 것은 일산에 사망산고를 내리는 것이라는 게 주민들의 불만이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격앙된 반응을 내세운 주민이 이미 있고 사방에 그 내용이 회자되고 있다.

올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부동산으로 경기 부양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문재인 정부의 집값 잡기 정책 기조를 그대로 밀고 나갈 뜻을 천명한 바 있다. 그 실행력이 의심스럽기는 해도, 또 정책으로 이미 오히려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앞으로 더 밀고 나가겠다는 게 정치 도의상 맞는지 회의적 반응도 많았다.

그럼에도, 정책 추진의 우직함만큼은 높이 평가하는 기류가 없지 않았다는 점은 사람에 대한 존중과 애정에서 출발한 정책이라고 다들 그 전제만은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3기 신도시를 대책이라고 내놓고 자화자찬하는 문재인 정권의 행동 양식을 보면 그야말로 아랫돌 빼어 윗돌 괴는 선을 넘어서서, 다른 누군가에게 피해를 줘서라도 당장 앞가림만 하면 된다는 정치 공학만 머리에 든 게 아닌가 의심마저 든다.

종호의 비정한 학살과 냉혹한 보험 논리가 왜 노예를 사람 아닌 재산으로 취급하던 시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법원조차 왜 그런 논리를 단호하게 돌려보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산 주민들의 재산권과 자존심을 짓밟는 얕은 수를 정책적 판단이라고 미화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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