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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History of Mr.Market Part.1 인천미두취인소와 미두왕 반복창

 

박하늘 인터넷카페 블랙버드 파트너스 공동연구원 | press@newsprime.co.kr | 2018.11.28 11:01:03

[프라임경제]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금융 시장은 경이로운 곳이지만, 인간이 참여하는 곳이기에 금융 시장에서도 끊임없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된다. 시장 역사에 대한 연구는 간접적으로 우리의 경험으로 습득되어 더 나은 투자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최초의 거래소이자 시장으로 볼 수 있는 곳은 바로, 인천미두취인소(仁川米豆取引所)다. 해당 거래소이자 시장은 과거 우리나라의 치욕적인 역사인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미곡 시장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1896년 5월 5일 인천에 최초로 개설한 기관이다.

인천미두취인소의 특이한 점은 현물 거래가 아닌 선물 거래소였다는 것이며, 쌀과 콩을 현물 없이 10% 수준의 증거금만 있어도 거래가 가능했다.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쌀값 변동성이 커지면서 미두 거래 열풍이 시작된다. 1차 대전의 종전과 전후 복구 사업으로 대호황을 맞은 일본은 개인 소득이 늘어나 쌀의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했다. 그러나 가을 흉년으로 쌀값이 폭등하게 되자, 미두시장의 시세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 시기 우리나라에서 '미두왕'으로 유명세를 떨친 반복창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21살의 청년 반복창은 미두 시장에 뛰어든지 1년만에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까지 미두의 왕으로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는 단 한 번의 거래로 18만원(현재 시세 약 180억원) 가량의 돈을 벌어들이는가 하면, 정확히 쌀 시세를 예측해 단 몇 년만에 재산을 40만원(현재 시세 약 400억원)까지 불렸다. 반복창이 미두로 거부가 되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고 그를 '미두신'이라고 부르며 추종하는 세력들도 등장했다.

그러나, 1922년부터 그는 지속적으로 미두 시세 예측에 실패하며 계속 손해를 보게 되었고,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투기적으로 거래'를 감행하게 된다. 결국 지속적인 실패로 인하여 불과 2년 만에 전재산을 탕진한다. 우리는 해당 시기의 역사와 반복창을 사례를 통해 투기적인 시장 참여는 결국 파멸의 길로 이끌게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지난 10월 국내 주식시장의 큰 폭 하락으로 인하여 많은 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보고 있다. 11월부터 시장 반등이 조금씩 보이지만, 투자자들이 지난 손해를 만회하기 위한 급한 마음을 가지고 '투기적 거래'를 통해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한번 쯤 돌아 봐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박하늘 인터넷카페 블랙버드 파트너스 공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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