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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고르비 서밋과 원희룡표 공휴일 사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3.29 09:20:06

[프라임경제] 헝가리 수교를 시작으로 불붙은 '북방외교'는 북한을 고립시킨다는 의미 외에도 냉전 갈등을 해소하고 우리 외교 지평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대단히 의미가 있었습니다.

중국과 수교를 해 무역 시장을 연 것을 이 북방 외교의 큰 사건으로 기억하는 이들도 적지 않겠지만, 가장 의미 있는 장면이라면 개인적으로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외교 물꼬를 튼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난 1991년 4월 제주도에서 진행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은 언론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이미 공산당 서기장이라는 직함 대신 대통령 명칭을 쓰는 등 상당히 평화적 제스처를 쓰던 고르바초프였지만 당시 우리 측에서는 냉전 종결의 역사적 장면이라는 생각에 의전에 무척 공을 들였습니다. 이 행사는 제주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이라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컸습니다.

그래서 당시 행사에 '전가의 보도' 호텔신라(008770)가 동원됐죠. 무대가 된 제주신라호텔의 격조높은 진행에 소련 측 반응도 좋았으며, 이 행사의 화기애애한 진행 덕에 우리나라에서도 저쪽 지도자를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부르거나 기사 제목 등에 적는 모습도 연출됐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술을 꽤 좋아해서 이 회담을 계기로 우리 전통주인 문배주 150병을 가져갔다 하고, 특히 호텔 측에서는 회담 기념 칵테일을 개발하는 등 깜짝 감동까지 선물했습니다. 당시 칵테일 이름은 정상회담임을 고려, 서미트(summit)로 작명됐습니다.

이 놀라운 기념 칵테일은 다만 지금은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소련이 붕괴한 후에 태어난 이들이 기자 생활을 한지도 이미 오래라, 그저 옛날 이야기 중 한 소품쯤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만 기억할 뿐 현실적으로 생명력 있게 살아남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면 역시 아무리 민간 전문가 집단의 노력이 가미됐지만, 행사를 위해 관제 이벤트의 한 부분이라는 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제주의 의미 있는 역사 한 토막을 이야기한 것은 제주 지역사의 한 장면과 지방 정치가 최근 맞물려 작지만 중요한 시비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인데요.

원희룡 지사는 제주 4·3 사건을 추념하는 의미를 극대화하고자 '지방 공휴일'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며 지정을 고려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제주도는 68만 도민 중 이 사건 유족이 6만일 정도로 이 사건이 제주 전반을 휘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정부가 난색을 표하며 제동을 걸 태세인데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공휴일을 조례로 제정한 것은 전례도 없는 일인 데다가 법률을 뒤져봐도 근거가 없는 일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공휴일은 국가만 지정할 수 있거든요.

▲원희룡 제주도 지사(오른쪽)가 지난 12일 제주 4·3 특별법 개정 요청을 위해 지상욱 바른미래당 정책위의장을 만나 동백꽃 배지를 선물하고 있다. 원 지사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마친 제주의 아들이라 이 사건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 ⓒ 뉴스1

원 지사 측은 외국의 경우에 일본이나 미국의 경우에도 지방분권 차원에서 지방 공휴일이 지정이 된 정신을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간곡히 호소 중입니다. 법적인 시비를 고려해 도민 전체의 강제성 있는 공휴일이라기 보다는, 공무원들의 휴무 추념일로 가겠다는 절충적 태도도 취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게 남발되는 것을 막아야 할 대의가 충분합니다. 원칙이 바로서야 한다는 행정의 대원칙도 있고, 무엇보다 각 지자체에서 보여주기식 혹은 선심성 행정에 이런 예를 악용할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죠.

더욱이 지금 지방선거가 임박한 사정도 원 지사의 행정에 중앙 정부나 서울 정치권에서 의구심을 갖고 의견을 낼 여지가 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안 된다고 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주민들에게 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원 지사는 과연 어떤 생각으로 했고, 지역 주민들은 더 적나라하게 말해 유권자들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면 풀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주도 사람들이 20여년전 서미트 칵테일은 굳이 기억해 주문해 마시지 않지만, 도 소속 공무원들이 조용히 지키는 추념일 휴무에 자발적으로 동참할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한다면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인 해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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