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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엄마 희로애락] 애 엄마의 '혼밥'은 힐링이다

고독을 '달콤한 포상'으로 즐기는 이유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6.02.26 09:34:11

▲"고기. 그것은 언제나 옳다!" 주로 즐기는 혼밥 메뉴는 패밀리 레스토랑의 샐러드 바와 스테이크 단품이다. 여유가 많으면 식사(보통 2시간)하고 혼자 영화 한 편 보고 귀가. 좀 서두르면 식사 뒤 다이소에서 마치 '패리스 힐턴'이 된 것처럼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집으로 향한다. = 이수영 기자


[프라임경제] 임신과 출산, 육아를 거치는 만 3년 동안 꽤 다양한 신체적 증상이 나타났다. 만성피로, 불면, 관절 및 근육통, 자세 왜곡 등등 그중에서도 최악을 꼽자면 다름 아닌 식이장애다.

세상에. 먹는 걸로는 '푸드파이터' 뺨쳤는데 식이장애라니. 아무도 못 믿을 그 한탄을 이렇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스스로 문제점을 확실하게 파악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기분 나쁠 정도로 음식을 쓸어 넣었다가 압박감을 못 참고 토해버리고 또 허한 느낌에 다시 냉장고를 기웃거리는 이상행동 말이다.

흔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단 둘째 출산 이후 백일이 넘도록 과거에 비해 12㎏ 가까이 불어난 체중은 원래 내 몸무게였다는 듯 사지에 달라붙어 빠질 줄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애들 챙기느라 뒷전이 된 식탐은 모두가 잠든 밤이 돼서야 봉인이 풀렸으니 말이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숟가락 쥔 내 손을 치거나 어깨, 무릎에 매달리는 ‘작은 악마들’이 없다. 그러니 하루 종일 억눌렀던 본능이 제어할 순간도 없이 폭발하는 것. 당연히 쾌감은 짧고 상당히 긴 자괴감만 남는 악순환임에도 멈추기 어렵다.

둘째가 생후 6개월이 될 때까지 일주일의 나흘 정도는 절식에 가까운 소식, 금요일을 기점으로 주말 동안은 폭식에 폭식을 거듭했다. 하지만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악순환의 고리는 어느 순간 다소 느슨하게 풀어져 있었다.

놀랍지만 허탈할 정도로 방법은 단순했다. 바로 '혼밥'(혼자 먹는 밥)이다. 여기서의 혼밥은 새벽에 음침한 골방에 숨어 걸신들린 듯 해치우는 '끼니'가 아니라 해가 떠 있는 밝은 날 손님이 적당히 붐비는 시내 음식점에서 1시간 이상 여유 있게 골라 먹는 '식사'를 말한다. 비뚤어진 욕구는 결국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볼멘소리였을까.

최근에는 혼밥이 일종의 유행처럼 번졌지만 대부분 혼자 사는 사람들, 깔끔한 싱글 라이프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이들을 묘사하는 매체의 클리셰(진부한 표현)도 있다. 이는
혼자 식사를 하고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이 이상할 것 없다, 이미 혼자가 익숙한 사람들은 과거부터 이어졌던 공동의 취사, 공동의 밥상이라는 가치의 굴레를 분연히 떨친 신인류라는 식이다. 결국 혼밥은 오롯이 홀로 있는 시간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반대의 의미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절실한 이들에게는 혼밥이 최고의 힐링타임이다. 쉽게 즐길 수 없는 만큼 가치 있고, 깊은 내상을 물리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가 아닌가. 특히 내성적인 애 엄마라든가, 내향적 성격의 애 엄마들, 수줍음 많은 애 엄마 같은 사람에게 혼자 있는 시간은 가장 편한 순간이다.

▲필자는 1부터 9까지 다 해봤지만 아직 고깃집 레벨 만큼은 깨지 못했다. '고기덕후'는 오히려 고기 혼밥이 두렵다. =이수영 기자


필자는 사실 다른 이와 눈 맞추는 것을 무서워한다. 먼저 말을 걸거나 대화를 이끌어 가는 것도 굉장히 부담스럽다. 스트레스를 안으로 묻어두는 편이고 남의 말 한마디 또는 악성 댓글에 부들부들 떨며 잠을 설치는 그런 사람이다. 그런 주제에 10년 가까이 '기자'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24시간 울음과 칭얼거림에 모든 의사소통을 일임한 두 꼬맹이의 존재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또 아이들을 데리고 외식할 때를 곱씹어 보면 실상은 노동의 연장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끊임없이 음식을 테이블, 바닥 할 것 없이 뿌리거나 흘리거나 놓치는 꼬마들 옆에 100매들이 물티슈 장착하고 붙어 앉아 돌보는 게 엄마의 역할이니까.

남편이 거든다며 애들 단속을 하지만 엄마들은 식사 중에도 아이에게 눈을 뗄 수 없다. 그러다 보면 먹었는지 넘겼는지 정신이 혼미하고 결국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식이다. 혼자 먹는 밥은 그래서 꿀맛이다.

내 가족,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있으니 당연히 행복하지 않느냐고, 어디서 배부른 소리를 하느냐는 타박도 엄청났지만 솔직한 마음은 '제발 하루에 3시간 만 혼자 있고 싶다!'며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요구가 관철됐을 때, 내 의지대로 움직여 좋아하는 것을 먹고 보고 싶었던 것을 봤을 때 채워지는 온기는 확실히 달랐다.

애 엄마에게 '혼밥'을 허하노라. 그 여유가 사포 같은 일상에서 '허니버터'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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